지난 번에 그을린 사랑 공연시간이 225분이라 너무 걱정된다고 글 올린 적 있는데요. 오늘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사실 생각의 대부분은 225분을 과연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걱정을 뒤로 하고 도착한 공연장이 좀 생소한 곳이라 처음가봤는데 너무 놀랐어요. 실내에서 촬영금지라고 하셔서 사진은 찍지 못 했지만 살면서 가본 곳 중 가장 멋있는 연극 공연장이었어요. 우선 무대 뒤로 대형 유리창이 있어서 밖의 올림픽 공원이 다 보이는데 그렇게 끝내주는 전경을 보여주는 연극은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듯 싶었어요.

보통 연극은 시작하면 무대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면서 배우가 나오기 마련인데 처음 안내사항만 방송이 나온 뒤 주변에서 잡음같은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연극이 시작했습니다. 사실 연극 시작한지도 몰랐는데 왠 아저씨 한 명이 나와서는 앞에서 말한 창 앞에 서서 밖을 계속 바라보더라구요. 별 생각이 없으면 극이 시작했는지도 모를 시작이었습니다.

이 연극은 약간의 부가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혹시나 연극을 보지 않으신 분도 어느정도 내용을 알면 좋을 것 같아요. 극은 주인공 쌍둥이 남매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장을 집행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쌍둥이 남동생은 누나와 함께 유언장 집행을 듣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신들에게 무관심했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누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왜 그러했는지 쫓게되고 결국 남동생도 그러한 누나의 뒤를 쫓아서 어머니의 죽음을 따라서 어머니의 유언장을 이행하기 위해서 여행하는 과정을 그린 연극입니다.

지금에야 연극을 다 봤으니 앞 장면도 전부 이해가 돼서 이렇게 설명을 하지만 연극 초반부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어서 대부분의 장면이 이해도 되지 않았고 아무래도 연극이다보니 상징적인 장면이 많아서 보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시간을 왔다갔다하는 연출은 극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에게는 괜찮을지 몰라도 극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도대체 지금이 언제를 말하고 있는건지 알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전부 아랍권 이름이어서 한 번 들어서는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는 것도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1부에서는 남매가 어머니를 찾아나서기까지 과정과 어머니가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전반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조금은 보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1부가 끝나고 15분 동안 진행되는 인터미션동안 몇몇 사람들은 관람을 포기하고 그냥 가더라구요. 조금만 참으면 정말 어마어마한 장면이 나오는데 1부만 끝나고 간 사람들은 정말 두고두고 후회할 거에요.

2부부터는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2부를 말하려면 이 연극의 연출에 대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을린 사랑은 이 번이 초연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의 사진을 찾아보니 무대에 콘크리트 구조물 같은 걸 만들어서 조금은 삭막하게 만들어놨더군요. 연극의 내용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하는 부분도 아니었지만 조금은 촌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번 연극은 과장 조금 섞어서 의자 4개와 식탁 하나 가지고 연출을 하는데 정말 이보다 더 세련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극장 자체가 워낙 잘 만들어져서 가능했던 부분도 있어 보여요. 우선 극장 뒤 쪽의 창을 정말 잘 사용했습니다. 처음 공연 시작할 때가 5시였습니다. 그 때 창밖보는 설정으로 밖을 보여주다가 커튼을 닫고 2부 끝쯤 8시경에 한 번 더 열어주는데 올림픽 공원의 끝내주는 야경과 밖의 도로로 보이는 차들 정말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연출같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관객이 앉는 객석을 마치 법정같이 연출하는 것이나 천창에 있는 무대설치용 난간을 연출공간으로 활용한 점등이 돋보였습니다. 너네 연극 좀 지루하지? 이 연출 보고 잠 좀 깨! 이런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지루함없이 극을 보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멋진 연출과 함께 2부에서 이야기는 점점 극을 치닫게됩니다. 연극을 보면서 점점 도대체 어머니의 유언을 어떻게 끝낼까 싶었는데.. 와... 결말을 보게 되면 연극의 모든 것이 이해됩니다. 등장인물의 모든 행동과 앞서 나왔던 내용들 모든 것이 한 번에 정리됩니다. 하지만 초반에 잘 모르고 보느라 놓친 것이 있어서 또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지간해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 잘 안 하는데 이 연극은 정말 다시 보면서 내용을 곱씹어보고 싶었어요.단지 결말 부분뿐만 아니라 이런 사단이 나기까지 이유를 설명한 부분도 맘에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전쟁의 아픔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하는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정말 제가 살면서 본 연극 중에 기억에 남는 연극 몇 개 있습니다. 관객모독,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 등 아직까지도 감동과 충격을 줬던 작품이 몇몇 개 있는데 그을린 사랑도 그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최고점수를 줘도 모자랄 것같은 연극이었어요. 혹시나 못 보신 분들 있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촬영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사진을 하나도 못 찍었네요. 그런데 몇몇 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찍으셔서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기도 했어요;)

이 글은 컬쳐블룸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Recent posts